관광
백선행기념관
  풍치수려한 대동강기슭에 운치를 돋구며 솟아있는 련광정에 서면 3층으로 된 화강암 석조건물이 안겨옵니다.
  1920년대에 건설된 백선행기념관입니다.



  백선행(1848년 11월-1933년 5월)이라는 한 녀인의 덕행을 전하는 유적입니다.
  평양부 박구리(지금의 평양시 중구역 중성동)에서 아버지 백지용, 어머니 김씨의 딸로 출생한 백선행은 어릴 때부터 어려운 가정형편과 모진 인생고초를 겪으며 성장하였습니다.



  그는 근면과 검박, 절약으로 거액의 자금을 마련하였으며 그것을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선한 일에 고스란히 바친것으로 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평양의 애국적 녀인입니다.
  그의 덕행은 《백선행기념관》에도 어려있습니다.
  당시 평양사람들은 지금의 대동문일대를 구시가지로, 평양역일대를 신시가지로 불렀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은 신시가지에 공회당을 건설하여놓고 일본인들만 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백선행은 민족적울분을 토로하며 조선사람들을 위한 공회당건설을 발기하고 막대한 건설비용을 자신이 맡아 나섰습니다.
  평양사람들은 백선행의 애국애민적덕행을 찬양하여 공회당이름을 《백선행기념관》이라고 불렀습니다.
  건물은 당시에 1층은 도서실로  2~3층은 예술공연, 강연, 집회를 하는 강당으로 리용되였습니다.


 
 
  이곳에는 그의 한생과 공적을 소개한 자료들도 전시되여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속에서조차 사라져가고있던 백선행의 애국적소행을 잊지 않으시고 그의 지성이 깃든 건물을 원상대로 잘 꾸리고 보존할데 대한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습니다.
  여러차례에 걸쳐 기념관원상복구형성안준비정형과 대책적문제들을 료해하시면서 기념관내부를 본래의 건물형식으로 꾸리는 문제와 거기에 필요한 비품보장문제까지 일일이 관심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씨선행기념비》와 비설명문판을 《백선행기념관》의 구내에 세우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습니다.
  현재 기념관앞마당에 백선행의 반신상과 그의 덕행을 전하는 기념비가 세워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