릉한산성은 평안북도 곽산군 곽산읍에서 동북쪽으로 약 3㎞ 떨어진 릉한산(412m)에 있는 고구려시기의 돌성입니다.

산성은 릉한산의 험한 자연지세를 잘 리용하여 쌓았습니다.
성벽은 릉한골을 안에 넣고 지세가 험한 사인봉봉우리의 좌우릉선을 타고 돌았는데 그 형태는 마치 광주리를 남쪽으로 기울여놓은듯 동북쪽이 높고 서남쪽이 낮은 고로봉(가운데에 오목한 분지가 있고 사방이 험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산성축조에 가장 리상적인 지세)형입니다.

성벽은 4각추형태로 다듬은 돌을 규모있게 쌓았습니다.
성벽의 둘레는 약 2.8㎞입니다.
성벽은 적들이 기여오르지 못하게 높고 든든하게 쌓았습니다.

현재 성벽의 높이는 4~6m정도이며 성벽우에는 성가퀴를 설치하였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성벽의 동, 서, 남, 북에는 각각 성문을 두었으며 남문에는 무지개문길을 냈습니다. 옹성터는 현재 남문과 서문에 자리가 남아있습니다.



성벽은 릉한골을 안에 넣고 지세가 험한 사인봉봉우리의 좌우릉선을 타고 돌았는데 그 형태는 마치 광주리를 남쪽으로 기울여놓은듯 동북쪽이 높고 서남쪽이 낮은 고로봉(가운데에 오목한 분지가 있고 사방이 험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산성축조에 가장 리상적인 지세)형입니다.

성벽의 둘레는 약 2.8㎞입니다.
성벽은 적들이 기여오르지 못하게 높고 든든하게 쌓았습니다.

성벽의 동, 서, 남, 북에는 각각 성문을 두었으며 남문에는 무지개문길을 냈습니다. 옹성터는 현재 남문과 서문에 자리가 남아있습니다.


성안에는 병실터, 무기고터, 후방창고터, 식량창고터 등이 남아있으며 물원천이 풍부합니다.
이 성은 나라를 지키는데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있었으므로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기까지 보수정비되면서 서북방을 지키는 중요한 성의 하나로 계속 리용되였습니다.
이 성은 나라를 지키는데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있었으므로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기까지 보수정비되면서 서북방을 지키는 중요한 성의 하나로 계속 리용되였습니다.
릉한산성은 고구려산성을 연구하는데서 가치있는 자료로 되므로 국보적유적으로 소중히 보존관리되고있습니다.